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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농 박재일

생명을 지키는 살림살이

강원도 김화의 어느 농민은 요즈음 고민에 빠져 있다. 아버지와 싸워가며 농약을 치지 않고 벼농사를 지었으나 쌀이 팔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벼가 95% 정도 익었을 때 수확했다. 이 때 수확한 벼가 가장 밥맛이 좋다. 물론 벼가 완전히 익었을 때 수확했다면 수확량이 5%나 더 증가할 뿐만 아니라 쌀의 모양도 꽉 찬 듯이 보여 팔기가 쉬웠을 것이다. 땅을 살리고 먹거리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 농사를 지었는데 웬걸 소비자가 알아주지 않는 것이다. 낱알이 왜 이렇게 싸라기 같느냐, 왜 색깔이 누렇느냐 하며 외면해 버린 것이다.황토에서 누런 쌀이 나올밖에... 그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집부리며 농사지었던가 하고 후회가 되었다.

전남 광주의 한 농민은 지난 해 밭에서 썪어가는 무를 보고 속을 태워야만 했다. 무가 줄기도 채 나오지 않았을 때 도시 상인이 찾아왔다. 무 가격이 오르리라고 예상한 이 상인은 밭떼기로 무를 계약하더니 선불까지 주는것이었다. 상인은 농약을 아무리 치더라도 좋으니 한 포기라도 깨끗이 키워달라고 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는 농약을 제대로 치는가 확인하곤 하였다. 그러더니 무값이 폭락할 조짐을 보이자 그는 발길을 뚝 끊어버렸다. 썩어가고 있는 자기 밭의 무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뽑지 못한 이 농민은 다음 농사까지 망쳐야 했다.

우리의 먹거리(음식)가 오염되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러한 반갑지 못한 소식을 접할 때 우리는 대개 혀를 차면서 먹거리를 오염시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잘못을 돌리고 이내 잊어버리고 만다. 항용 있는 일이니 어찌 화만 내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왜 먹거리가 그처럼 오염되었는지를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나와 내 가정의 생명이 위협당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만은 없지 않은가?

 

소비자들도 나서야 한다.

 

‘한살림’ 농산의 살림꾼 박재일 씨(50세). 그는 원주교구 농촌 부락 개발 활동에 참여하면서 병들고 죽어가는 땅, 뒤틀려가고 있는 농민의 의식 등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다. 화학 비료로 땅의 지력은 쇠퇴해 가고 먹거리는 농약에 찌들어 갔다. 더구나 가슴 아픈 것은 농민들이 자신이 먹을 작물에는 농약을 치지 않지만 팔려고 내놓을 작물에는 화학 비료와 농약을 남용하는 것이었다. 농민들 또한 편의주의, 이기주의, 물질주의에 토대를 둔 현구조의 희생자였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농약을 쓰지 않고 퇴비를 이용하여 생명의 농사를 짓는 농민들도 없지 않았다. 1년 농사를 잘못 지으면 3-4년 타격을 입게 되는 그들에게 있어서 생명의 농사로의 전환은 큰 모험이었다. 그러나 이 모험을 감내하고 농사를 지어도 때깔좋은 것을 찾는 소비자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소비자들이 이들의 물품을 구입해 주기만 한다면 생산자들도 마음놓고 생명을 키워나갈 수 있을 텐데...

그는 직접 고추 등 물품을 구입하여 본당 등에 내다팔기 시작했다. 이것은 하나의 시도로서는 큰 의의가 있었으나 생명을 회복시키기에는 너무나 미흡했다. 소비자들은 땅과 농민의 문제가 곧 자기 생명의 문제임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곧잘 농민들을 돕고 자선을 베푸는 양 농산물을 사가는 것이었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만나 삶을 나누고 믿음을 쌓아가지 않는 상태에서 개인적으로 한번으로 끝나는 이러한 직거래가 무슨 큰 소용이 되겠는가? 소비자들이 조직하여 지속적으로 주문하고 생산자와 만나는 것이 필요했다.

그는 작년 12월 4일 서울 제기동에 ‘한살림’의 문을 열었다. 외롭게 생명의 농사를 지어온 농민들에게 그들을 이해하는 소비자들을 연결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무농약 쌀, 유정란(달걀), 참기름 등을 취급하고 있는 그는 전화만 하면 서울 일원 어디에나 배달하고 있다. 최근에 여러 본당, 여성 단체, 소비자 모임 등이 생명을 살리기 위한 직거래 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그는 자신의 희망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 모험을 꺼리고 주저하던 농민들도 차츰 생명의 농사야말고 우리가 살길이라고 느끼고 동참하게 될 것이다.

 

살림을 살리기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의 폐해를 모르는 농민이 없듯이 먹거리가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소비자도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사실을 심각하게 여기고 구체적으로 개선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소비자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나 혼자 또는 몇몇 사람이 노력해 봐야 얼마나 개선되겠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무관심, 수동성은 우리의 마음까지 병들게 하고 있다.

‘살림살이’는 말 그대로 살리는 일이다. 이 일에는 특히 살림을 맡는 가정주부들이 나서야 한다. 가족의 생명을 다른 사람에게 내맡겨 놓을 수는 없다. 소비자는 생산자를 바꿀 큰 힘이 있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상품을 내놓기 때문이다. 1984년에 한국가톨릭농민회와 한국공해문제연구소가 공동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가격과 판매만 보장된다면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겠다는 농민이 75.6%나 된다.

우리의 먹거리가 찬미와 감사로써 받아들이는 일용할 양식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닫혀 있는 이웃의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웃과 진지하게 구체적으로 살림살이를 나누고 믿음을 다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가령 이웃이나 교우 중에 기름집을 경영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깨는 생산자에게서 공동 구입하고 기름을 짜는 일은 그 교우에게 맡길 수도 있다. 이처럼 아주 작은 일부터 함께 시작하여 차츰 가짓수를 늘리면서 생산자와 직거래를 하게 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소비자와 생산자는 이해 관계가 아니라 서로 믿고 도우며 격려하는 관계를 이루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농산물이 공산품과 달라 생산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품질이나 규격에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주문한 전량을 인수해야 한다. 생산자는 물론 소비자의 요구대로 생산하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직접 만나 거래함으로써 유통 비용을 최대한으로 줄인다고 하더라도 직거래 농산물의 가격은 시중 가격보다 비쌀 때가 있다.

몇 년을 두고 보면 대개 비슷한 가격을 형성한다고 하나 수입이 일정한 소비자들에게 있어서 가격 문제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건강을 돈으로 바꿀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주부들이 생활의 지혜를 발휘해 볼 필요가 있다. 가령 한 달에 쌀이 다섯말 필요하다면 네 말만 직거래로 구입하고 부족분은 잡곡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또 일주일에 달걀이 한 판 필요하다면 반 판으로 절약하는 방법도 있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모임이 연대하고 그 요구가 지속적이고 조직적이면 직거래는 생명을 살리고 지키는, 무너질 수 없는 힘이 된다. 또한 함께 일하고 삶을 나누는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살림살이가 살고 땅이 살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 역시 생명으로 넘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이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다. 세상을 창조하신 후 보시니 좋았다고 하셨던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1987년 5월 경향 잡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