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인농 박재일'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6.22 고 인농(..農) 박재일 회장을 기리며
  2. 2012.06.22 인농박재일 선생 연보
  3. 2011.09.14 仁農 박재일 선생의 생애

고 인농(..農) 박재일 회장을 기리며

인농 박재일 2012.06.22 18:00 Posted by "한살림답게!" 인농박재일 한살림연합소식

 

고 인농(..農) 박재일 회장을 기리며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생명농업의 선구자 박재일 회장이 지난 8월 19일에 선종했습니다. 신앙과 사회적 관점에서 저는 고인의 삶을 다음과 같이 기립니다. 경북 영덕에서 10남매 중 5남으로 태어난 그는 대학 재학 중인 1964~65년 한일협정반대 시위 주도로 옥고를 치르면서 생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65년 이옥련 님과 결혼한 그는 옥중에서 첫 딸의 아버지가 됩니다. 졸업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해 서울에 간 남편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인은 전혀 놀라지 않은 채 남편이 선택한 길과 삶은 언제나 옳다고 확신했으며 이 신뢰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한결 같았습니다.

박재일 회장은 딸 다섯을 낳아 아름답게 키운 아버지이며 부인을 사랑하고 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실천적 페미니스트이기도 합니다. 그는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룩한 신심 깊은 가장입니다. 동료 그리고 후배들과 어울려 시대를 고민하며 술 마시고 자주 늦게 귀가하여 잠자던 어린 딸들을 꼭 깨워 밤 인사를 했기에 주변을 번거롭게 하곤 했지만 그것은 순박함의 한 면이었습니다. 45년간의 결혼생활을 회고한 부인은 남편이 오직 삶의 중심이고 모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가부장적 정치.사회 종교문화에서 여성의 가치가 보완되어야 할 우리 시대에 그는 참으로 아내와 철저한 사랑과 존경을 나누고 무엇보다도 자녀들의 의견을 존중 했던 이상인 이기도 합니다.

그는 스승 장일순 선생으로부터 인농(..農)이라는 호를 받았습니다. 어진 농부,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누가 어진 아내를 얻을까?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다.”(잠언31,10) 라는 아내 예찬가는 이제“누가 어진 남편을 맞이할까? 그 값은 그 어떤 보물보다 더 값지다”라는 남편예찬가로 바뀌리라 생각합니다. 농부는성서문학에서하느님의표상입니다.“ 나는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조리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잘 가꾸신다.”(요한15,1-2)

사실 농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땅과 함께 지내는 농부는 또한 이상적 그리스도인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힘들여 일한 농부가 소출을 먼저 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2티모2,6) “농부는 땅의 귀중한 소출을 낼 때까지 끈기 있게 가을비와 봄비를 기다립니다.”(야고보5,7)

농부는 하늘의 권리를 보장받는 사람이며 하느님의 섭리에 겸허하게 승복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암울했던 70년대 초 구속된 지학순 주교와 학생들의 석방을 위한 기도 모임에서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분의 겸손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는 늘 미소 중에 과묵하며 이웃의 말을 귀담아 듣고 실천적 지혜를 제시하여 언제나 모든 이에게 아름다운 향기를 남긴 분입니다. 그는 학생운동에서 출발하여 재해 대책, 농민운동, 한살림운동 그리고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통해 민주주의의 핵심인 생명의 가치를 직시했습니다. 1979년 가톨릭 농민회의 새로운 위상 정립과 진로모색의 갑론을박 토론과정에서 그는 아름다운 미래를 실현키 위해 농민회의 방향이 모름지기“생명공동체운동”으로 나아가야 함을 주창하여 오늘의 생명농업문화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반독재 민주화라는 목숨을 건 투쟁의 현장에서 그는 바로 초월의 가치인 생명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는 우직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예언자적 직관과 한길만을 걸어온 충직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이치와 상통하여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가장 지혜롭고 아름다운 가치입니다.(1코린1, 18이하 참조)

그는 생명의 등불입니다. 이제 그 불꽃은 후배, 동지들을 통해 더욱 강하게 타오를 것입니다. 그는 또한 많은 열매, 생명의 결실을 남긴 한 알의 밀알이며 하느님께 바쳐진 향기로운 제물입니다.(에페5,2) 저는 그분의 잔잔한, 그러나 생명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칭송합니다. 아내에게 절대적 신뢰와 사랑, 그리고 자녀들에게 존경받았던 아버지, 사제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신앙인, 선후배 동료들에게 신의, 우의, 공정, 겸손, 연대의 표본이 되었던 분, 그는 참으로 우리 농민을 사랑하고 지킨 우리 민중의 든든한 뿌리이며 버팀목입니다.

병상에서 부인에게 남긴 그의 마지막 말을 되새깁니다.

“나를 만나서 고생 많이 했소. 미안하오. 꼭 일어나겠소.”

일어난다는 것은 바로 부활을 뜻합니다. 물론 그는 일어서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우리 앞에 생명농업의 선구자로 우뚝 서계십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운동은 모름지기 생명에 기초하여 생 명을 지향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생명을 지키는 아름다운 제도입니다. 우리 모두 그분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며 생명의 가치를 지향  하고 함께 확인합니다. 감사합니다.

[희망세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0년 9월)

 

'인농 박재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 인농(..農) 박재일 회장을 기리며  (0) 2012.06.22
인농박재일 선생 연보  (0) 2012.06.22
仁農 박재일 선생의 생애  (0) 2011.09.14

인농박재일 선생 연보

인농 박재일 2012.06.22 16:17 Posted by "한살림답게!" 인농박재일 한살림연합소식

인농박재일 선생 연보

1938년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사암2구에서 태어남

1959년

2월 경북고등학교 졸업

1960년

3월 서울 문리대 지리학과 입학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김중태, 현승일, 김도현 등과 함께 시위 주도 계엄령 발동, 도피생활 시작

1965년

3월 이옥련 여사와 결혼

1965년

한일수교협정이 조인되고 반대시위가 격화되면서 구속

1969년

8월 김지하 시인의 권유로 원주로 내려가 장일순 선생을 만나고 진광중학교 영어교사가 됨

1971년

진광중학교 내의 협동교육연구소에 합류하고 학교내 신협 창립에 참여

1972년

8월 집중폭우로 남한강 일대 대홍수가 벌어져 수재민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개발사업에 동참

1973년

가톨릭농민회에 참여

1981년

재해대책 실무자들과 일본생협, 생활클럽, 대만 원주민소협 등 방문

1982년

가톨릭농민회 회장

1984년

가농 지도자들과 일본 유기농 산지 등 방문

1985년

원주소비자협동조합 설립되고 초대 이사장이 됨

1986년

12월4일서울 제기동 한살림농산 설립

1988년

2월 소비자협동조합중앙회 3대 회장 역임

4월 21일 한살림공동체생활협동조합 설립

1989년 10월29일

발표된 한살림선언 공동 집필에 참여하고, 당일 창립된 한살림모임 의장으로 취임

1991년

11월 우리밀살리기 운동을 시작하고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공동대표

1994년

2월 사단법인 한살림 설립

11월 환경농업단체연합회 결정을 주도하고 초대 회장 역림

1997년

10월 일본 그린코프생협과 함께 북한동포돕기성금 한겨레신문에 전달

11 철탑산업훈장 수훈

2000

6월 서울 환경상 대상

2001

12 한살림이 아프카니스탄 난민돕기 모금 진행

2005

12월 한살림이 친환경농업대상 소비자 유통부문 최우수상

2006

5월 한살림, 생명의쌀 기금 모금을 통해 북한 고성군과 남쪽 사회복지시설 등에 1억5천만 원 상당의 유기농쌀을 전달

2009

4 제 13회 정일형 이태형 자유민주상 수상

2009년

1월 위암 발병으로 투병 시작

8월 일가상 수상

2010년

2월 한살림 명예회장 취임

8월 73세를 일기로 별세

'인농 박재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 인농(..農) 박재일 회장을 기리며  (0) 2012.06.22
인농박재일 선생 연보  (0) 2012.06.22
仁農 박재일 선생의 생애  (0) 2011.09.14

仁農 박재일 선생의 생애

인농 박재일 2011.09.14 16:30 Posted by "한살림답게!" 인농박재일 한살림연합소식

박재일 선생은 1938년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사암2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서울대학에 입학한 청년 박재일은 4·19혁명에 참여하고 1964년 굴욕적인 한일수교에 반대하는 6.3운동에 앞장섰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에 평생의 반려인 이옥련 여사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요구에 반하는 한일협정이 비준되고 국민적 저항이 다시 번지자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는 그를 연행해 혹독한 고문 끝에 구속시켰고 신혼의 아내가 첫 아이를 잉태한 채 그를 옥바라지 해야 했습니다.

감옥을 나선 뒤 박재일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만나고 1969년 강원도 원주에 내려가 사회개발위원회, 가톨릭농민회에 참여하며 협동과 자조운동에 매진하며 우리 농업과 농촌 현실을 개혁하고자 힘썼습니다. 1980년대 이후 박재일은 지학순 주교 장일순 선생 등 원주지역 사회운동가들과 함께 반독재민주운동을 넘어 시장의 논리와 산업주의 세계관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문명적 대안을 모색합니다.

1985년의 원주소비자협동조합의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1986년 12월 서울 제기동에 한살림 농산을 열었습니다. 박재일은 온 우주생명, 도시와 농촌이 모두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한살림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짓고 모심과 살림의 새로운 사회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의 출발과 성장은 생명농업을 근간으로 도시와 농촌이 서로 협력하는 직거래운동을 확산시키고 우리밀살리기운동, 환경농업단체연합회의 결성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생활협동조합운동이 발전하는데 영향을 끼쳤고 친환경농업지원법 제정과 농림부에 친환경정책과가 설치되게 하는 등 우리 사회에 친환경농업에 관한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도록 기여했습니다.

2010년 8월 21일 장례식 홍보물에 실린 내용입니다.

'인농 박재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 인농(..農) 박재일 회장을 기리며  (0) 2012.06.22
인농박재일 선생 연보  (0) 2012.06.22
仁農 박재일 선생의 생애  (0) 2011.09.14
TAG 박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