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농 박재일

仁農 박재일 선생의 생애

박재일 선생은 1938년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사암2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서울대학에 입학한 청년 박재일은 4·19혁명에 참여하고 1964년 굴욕적인 한일수교에 반대하는 6.3운동에 앞장섰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에 평생의 반려인 이옥련 여사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요구에 반하는 한일협정이 비준되고 국민적 저항이 다시 번지자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는 그를 연행해 혹독한 고문 끝에 구속시켰고 신혼의 아내가 첫 아이를 잉태한 채 그를 옥바라지 해야 했습니다. 

 

감옥을 나선 뒤 박재일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만나고 1969년 강원도 원주에 내려가 사회개발위원회, 가톨릭농민회에 참여하며 협동과 자조운동에 매진하며 우리 농업과 농촌 현실을 개혁하고자 힘썼습니다. 1980년대 이후 박재일은 지학순 주교 장일순 선생 등 원주지역 사회운동가들과 함께 반독재민주운동을 넘어 시장의 논리와 산업주의 세계관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문명적 대안을 모색합니다.

 

1985년의 원주소비자협동조합의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1986년 12월 서울 제기동에 한살림 농산을 열었습니다. 박재일은 온 우주생명, 도시와 농촌이 모두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한살림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짓고 모심과 살림의 새로운 사회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의 출발과 성장은 생명농업을 근간으로 도시와 농촌이 서로 협력하는 직거래운동을 확산시키고 우리밀살리기운동, 환경농업단체연합회의 결성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생활협동조합운동이 발전하는데 영향을 끼쳤고 친환경농업지원법 제정과 농림부에 친환경정책과가 설치되게 하는 등 우리 사회에 친환경농업에 관한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도록 기여했습니다.

 

2010년 8월 21일 장례식 홍보물에 실린 내용입니다.